“경제학은 어렵다.” 이런 생각으로 교과서 첫 페이지도 넘기기 힘들었던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실 경제학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이다. 우리는 매일 물건을 사고, 선택을 하고, 일하고 돈을 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경제학의 영역 안에 있다.
이번 글에서는 경제학의 핵심이 되는 희소성,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이라는 세 가지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경제학을 이해해보려 한다. 또, 해외 사례를 통해 개념이 실제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함께 살펴보자.
1. 희소성과 선택의 원리
경제학의 출발점은 바로 희소성(scarcity)이다. 세상 모든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돈, 시간, 에너지, 땅 등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선택이 경제적 사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24시간밖에 없다면, 그 시간을 공부에 쓸지, 운동에 쓸지, 알바를 할지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자원이 무한하다면 이런 고민 자체가 필요 없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제한된 자원 속 최적의 선택을 요구한다.
희소성 개념은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산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에 돈을 더 쓰면 국방이나 교육에 투입할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학은 항상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다.
2.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시장을 만든다
경제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공식이 있다면 바로 수요와 공급(Demand & Supply)이다. 시장에서 가격은 이 두 가지 힘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 수요(Demand): 소비자가 특정 가격에서 얼마나 사고 싶어 하는가
- 공급(Supply): 생산자가 특정 가격에서 얼마나 팔고 싶어 하는가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난다. 반대로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어든다. 이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시장균형가격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시기 마스크 가격이 급등했던 이유는 수요 폭증 + 공급 부족 때문이었다. 이후 정부가 마스크 생산을 확대하고 유통을 안정화하자 가격이 서서히 내려가며 균형점에 가까워진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해 차량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원자재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망 병목 현상과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가 동시에 작용한 사례였다.
3. 기회비용을 알면 합리적 판단이 쉬워진다
세 번째 핵심 개념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어떤 선택을 할 때 포기한 다른 선택지의 가치를 말한다. 즉, 내가 A를 선택함으로써 얻지 못한 B의 가치가 바로 기회비용이다.
이 개념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얼마나 합리적인 소비와 투자를 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말에 10만 원을 들여 친구와 여행을 갈지, 그 돈과 시간을 아껴서 온라인 강의를 들을지 고민한다고 하자. 만약 그 강의가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된다면,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그 학습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것이 바로 기회비용이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라는 사업에 투자하면 B라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래서 기업은 항상 ‘기회비용 대비 수익’을 비교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 한다.
해외 사례로는 영국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있다. 학비가 비싼 대학 교육 대신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이 대학에 쏟는 비용 대비 실질적인 수익률을 따지는 사고를 장려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다.
결론: 경제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다
희소성, 수요공급, 기회비용. 이 세 가지는 경제학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이 개념만 잘 이해해도 우리는 뉴스에서 나오는 물가, 환율, 정부정책을 훨씬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제학은 숫자와 그래프만 있는 게 아니다. 사실은 우리 삶의 모든 선택을 설명해 주는 언어다. 커피를 마실지 말지, 회사를 옮길지 말지, 나라가 어떤 세금을 올릴지… 이 모든 고민과 결정 속에 경제학이 있다.
그러니 경제학을 너무 어렵게만 느끼지 말고, 생활 속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경제학적 판단을 하고 있다. 단지 그 언어를 몰랐을 뿐이다.